[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 친구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11시가 넘은 밤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이렇게 늦은 밤중에 오는 전화는 십중팔구 급하게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나쁜 일이거나, 잘못 걸려온 전화일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늦은 밤에 고등학교 동기 친구의 부고 문자를 받은 후로는 밤늦게 오는 문자나 연락에 우려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혹시나 하면서 전화를 받으니 다행히 미국 뉴욕에 사는 친구로부터 온 안부 전화였다. 늦은 밤이라 다른 식구들이 잠을 자고 있어 양해를 구했더니,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부리나케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지난밤 친구들 단톡방에 좋아할 만한 노래를 올리면서 잠이 안 와서 보낸다고 한 문자를 보고, 통화라도 할까 하고 연락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늦은 줄 몰랐다고 하면서 미안해한다.

하지만 나는 밤늦게 전화를 걸어온 것에 대해 불평하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는 문자를 받고 나를 생각하며 멀리서 국제 전화까지 걸어준 친구가 새삼 고맙기만 하다.

지금 뉴욕에 사는 이 친구 Y와는 배재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알고 지낸 지가 햇수로 따지면 거의 50년이나 된다.

6년 동안 같은 학교에 다닌 것뿐만 아니라 운동부 활동도 같이 했으니 가까울 수밖에 없는 친구다.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하고 학생회 일도 할 정도로 통솔력과 리더십이 있던 친구였고, 무엇보다 말주변이 좋아 설득력이 뛰어났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친구들은 그의 설득에 넘어가 그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어찌 보면 그의 설득력에 피해(?)를 본 사람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학교 1차 시험에 실패하고(본고사를 며칠 앞두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영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내 인생의 첫 실패였다) 나는 재수를 택했다. 꼭 가고 싶었던 대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수를 하는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일관되게 K 대학교 경영학과를 목표로 앞만 보고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 입학원서 접수를 시작할 무렵,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친구 Y가 찾아왔다. 재수하면서 세상과 담쌓고 공부만 하던 나와는 다르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던 친구는 차림새부터 달랐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친구가 어떻게 나를 설득했는지 지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요지는 이렇다. 
내가 원했던 경영학과에 들어가 봤자, 결국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하여 직장 생활의 격무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승진을 하더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인생을 살 뿐이다. 

하지만 예술인의 길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면서 이름도 남길 수 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그 짧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되돌아보면 왜 이런 단순하고 뻔한 논리에 넘어가 생각지도 않은 연극영화과에 덜컥 원서를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 학원이란 틀 속에서 정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고 있던 상황이 그 친구의 말에 크게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친구의 달변으로 이어진 설득에 넘어가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으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친한 친구일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사회학자들은 친한 친구를 만드는 조건으로 1) 접근성 2) 지속적인 만남 3) 계획하지 않은 교류를 들고 있다. 이 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환경이 학창 시절일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특히 중,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이 제일 두텁고 오래 가는 것 같다. 

직장 동료들과의 우정도 접근성이나 지속적인 만남의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많은 경우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이해타산에 따른 교류가 따르기 때문에 그런 사귐은 직장을 나온 후에는 계속 이어지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같은 동년배를 친구로 여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마 같은 나이에 입학하여 같은 학년에 학교를 다니게 됨에 따라 친구라는 개념이 동갑 또는 동급생이라고 규정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학년은 선배나 후배로 분류된다.

하지만 나라와 문화에 따라 친구의 개념과 범위가 다르다. 내가 살았던 뉴질랜드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친구라는 표현을 쓴다. 나도 처음에는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이나 아버지뻘 되는 노인들이 나를 친구라도 칭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겹게 여겨지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친구의 개념을 허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말이 있듯이 예전에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마음만 맞으면 벗으로 사귀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도 5살 차이가 났지만, 평생에 걸쳐 각별한 우정을 나눈 막역한 친구 사이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는 동년배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술도 오래 익힌 술일수록 향과 풍미가 다르듯이, 친구도 세월의 흐름을 거치면서 사귄 오래된 친구일수록 우정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다. 친구(親舊)라는 말 자체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의 길에서 전환점을 만들어준 친구 Y는 정작 자신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발뺌을 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행태를 보였다 가도, 결국 내 말이 맞을 거라고 순순히 인정해주면서 내 편에 서는 걸 보면 역시 농익은 50년 지기 친구임이 분명하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