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 변화와 기회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변화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변화는 도전이 될 수도 있지만 잘 이용하면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나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큰 변화가 두 번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에서의 나의 선택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큰 전환점은 대학 선택과 졸업 후 진로였다.
나는 재수를 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재수까지 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고 하면, 혹시 연예계에 진출하여 큰 스타가 되려는 꿈이 있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수할 때도 나는 내가 원했던 K 대학의 경영학과나 법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수 막바지에 학원에 찾아온 친구가 해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에 마치 무엇에 씌운 듯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거의 충동에 가깝게 갑자기 마음을 바꿔 연극영화과를 선택했지만 나는 결국 연극인의 길로 가지 못했다.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계속하기보다 2년 동안 집을 떠나 교회 봉사를 하기로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무슨 거창한 소명 의식이 있었거나, 맹목적인 종교관에 빠졌다든지 또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신앙을 정리해보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을 확고히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 선택으로 나의 삶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내가 목표로 했던 예술인의 세계와는 다른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 두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연극의 길에 충실했고, 학창 시절에 ‘엘렉트라’, ‘리어왕’, ‘리처드 3세’ 등 여러 연극에 주연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으며 열심히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졸업하고 극단에 진출한 선배들로부터 서로 자기 극단으로 오라는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내가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 연기 생활을 계속했다면, 아마 지금쯤 꽤 알려진 중견 배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과 동기 중에 심한 경상도 사투리로 인해 연극 공연 때마다 소소한 배역을 맡거나 스텝으로 돌던 친구가 국립극단에 들어가서 꾸준히 연기 생활을 계속하더니, 이제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도 계속 연극을 했더라면 아마도 연극계나 영화계에서 나름 인정받는 배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내가 택한 결정으로 내 인생길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뉴질랜드로의 이민이다.
나는 유혹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不惑)도 한참 넘은 나이에 가족들을 데리고 무작정 이민을 갔다. ‘무작정’이란 표현을 쓴 것은 오랫동안 이민을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몇 년 전 먼저 이민을 갔던 친구의 말을 듣고, 아내와 같이 뉴질랜드에 일주일 동안 방문한 뒤, 이민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산아제한을 외쳐 대던 때에 아들만 넷을 낳았으니, 건강 보험 제약이라든지, 세금 불이익 등을 차치하고라도 이곳에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가르칠 자신이 없었고, 나 자신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때였다.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내 인생에 큰 변화이며 도전이었다. 물론 자녀들도 국적이 바뀌고 자기 삶의 근거지와 터전이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변화를 상대적으로 적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쌓은 모든 경험과 경력을 뒤로하고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늦은 나이에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어려운 길이었다. 하지만 내가 당면한 변화를 받아들였을 때 그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갈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한국에 있을 때 대학에서는 연극을 전공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세 대학원에 들어가 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환경이 바뀐 뉴질랜드에서 다시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고, 언어 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아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한 50이 넘은 나이에 원래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법대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어 법조인의 길도 걸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대양주 총한인연합회 법률 고문으로, 뉴질랜드 와이카토 지역 한인회장으로 봉사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상처가 스승이다’라는 시 속에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에 내가 계속 한국에 머물러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만족하며 변화를 맞이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 이런 극적인 전환의 기회는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변화는 도전이었지만 곧 기회가 되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평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왜 세 번의 기회가 오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주역에 의하면 한 사람의 인생은 18년이라는 주기를 통해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50대였고 60세가 넘으면 장수했다고 하던 때였으니까, 18년의 주기가 3번 오게 되니 평생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백 세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과학의 발달로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서 세 번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피천득은 ‘인연’이란 수필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다

나는 기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회가 왔어도 못 알아보거나, 기회인 줄 알면서도 놓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백 세 시대를 맞이해서 지나간 기회를 아쉬워하기보다 현명한 사람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내듯, 앞으로 올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