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7] 논산 형님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아이구, 이게 누구야?”
양말 신은 채로 달려와 두 손을 잡는데, 형님 얼굴에 눈물이 글썽인다. 나도 그 마음이 헤아려져서 울컥해진다.

“연락도 없이 그냥 왔습니다.” 목이 메는 걸 참으며 괜히 한마디 해본다. 
피붙이는 아니지만, 형제 없이 외아들로 혼자 자란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친형님 같은 분이다. 

서울에 사시다가 처가가 있는 논산으로 내려와 살고 계셔서, 한번 들려야지 하면서도 마음 먹기가 싶지 않았는데, 대전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맘먹고 논산에 들렀다.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이시네요.” 그냥 건네는 인사말인 줄 알면서도 형수님의 인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사실 변하지 않은 건, 아니 나이가 멈춘 것 같은 모습은 형수님한테 어울리는 말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처럼 기른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백발이 되어 완전히 촌로(村老)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형님과는 대조적으로 검은색 염색을 하신 형수님은 더 젊어 보였다. 보기에만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늦게 시작한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마음마저 회춘하신 듯 편안해 보였다. 

70이 넘어 시작한 유화 솜씨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전시회를 열어도 될 만큼 훌륭했다. 초등학교 때도 그림을 잘 그리셨다고 하는데, 이제 늦게 그 솜씨가 발휘되고 있었다. 거실 벽에는 형수님의 작품이 마치 그림 전시회처럼 걸려 있어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형님과의 인연은 참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친구 따라 갔던 교회에서 인사를 하는데, 가수 변진섭을 닮은(변진섭보다는 키도 크고 더 잘 생겼지만 스타일과 분위기가 비슷한) 어떤 대학생 형이 “어, 내 이름이 뒤집혔네.”하고 웃길래 무슨 영문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 이름이 내 이름 ‘상익’이 뒤집힌 ‘익상(益相)’이었다. 성(姓)도 같고 그런 이름의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다가 교회를 옮기면서 연락이 끊겼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교회 봉사를 한 후 청운동에 있는 한 직장에 취직하여 그곳에서 논산 형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익상’ 형의 바로 위 형님이었다. 동생과의 인연도 있고, 같은 청주(淸州) 한씨(韓氏)인 것도 있었지만 형님하고 가깝게 된 데는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청운 터널이 뚫려 있어, 옛 정취를 잃었지만, 터널이 뚫리기 전 그곳 청운동 사무실 위에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야외 농구장이 있었다. 우리는 점심시간만 되면 게 눈 감추듯이 후닥닥 점심을 먹은 다음 부리나케 농구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거기서 양쪽 농구대 기둥을 맞추는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남자 직원들이 한데 어울려 몸을 부딪치고 콘크리트 바닥에 살이 까져가면서도 공 하나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거기서 단연 돋보이는 건 형님이었다. 유도로 단련된 탄탄한 몸에 동작도 민첩하고 발놀림도 좋아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농구대 기둥을 절묘하게 맞추는 기술이 탁월했다. 

우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리지 않고 점심시간을 기다렸고, 승부를 보지 못하거나 경기가 과열되면 종종 업무를 마친 후에도 남아서 밤에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공을 차기도 했다.

그러다가 근무지를 신당동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는 실내 농구 코트가 있었지만 우리는 배구를 주로 했다. 배구 경기 인원이 모자라면 탁구를 하기도 했다. 형님은 배구 실력 또한 출중하여 군대 배구 시합이 있으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세터였다. 형님이 세터로 토스를 올리면, 내가 스파이크를 넣는 우리는 잘 맞는 콤비였다. 

우리 직장 바로 앞에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으로 합병되어 없어짐)이 있었고, 우리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에 가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배구 시합을 했었다. 물론 이때도 어김없이 형님의 토스와 내 스파이크가 주 공격 전술이었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사무실 앞 건물 지하에 검도 도장이 들어왔다. 운동에 관심과 열정이 대단했던 형님은 50이 넘은 나이에 앞장서서 검도를 배우자고 제안했고, 그 꾐(?)에 빠져 여자 직원을 포함하여 여러 직장 동료들이 등록하면서 직장에 검도 바람이 불었다. 

나도 그렇지만 형님도 뭘 하나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검도를 계속하여 결국 승단(昇段)한 사람은 형님과 나뿐이었다.

형님 방에는 늘 큼지막한 아령을 비롯하여 여러 운동 기구들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도 항상 운동하면서 몸 관리를 하여 근육질 몸을 유지하며 늘 활력이 넘쳤던 형님은 젊은 직장 동료들의 롤 모델이었다.

난 이런 형님을 춘추 전국시대 전략가 손무가 쓴 손자병법 중에 나오는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복장'(福將) 중에 ‘용장'(勇將)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팔순 노인네가 되어 전동 휠체어 신세를 지는 형님은 이제는 ‘용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도 일 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전 직장 후배들이 있고, 
아버님 편하게 쓰고 보시라고 인텔 코어 i7의 최신식 고성능 노트북과 큼지막한 벽걸이 TV를 사드린 아들과 
늙어서 돈 없으면 힘 빠진다고 5,000만 원을 선뜻 입금해주었다는 미국 사는 사위와 
시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우고, 시아버지에게 침을 배운다는 핑계로 매주 찾아와 시간을 보내주는 어진 며느리가 있고, 
끼니때마다 새 밥을 하고 이빨이 시원치 않은 남편을 위해 순대 껍질을 벗겨 내놓는 아내를 곁에 둔 형님은
‘덕상'(德相)이란 이름에 걸맞은 ‘덕장'(德將)을 넘어 누구나 되고 싶어하고 부러워하는 ‘복장'(福將)이 되어 있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