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이런 제기랄!”
밤 11시가 넘어 고등학교 동기 모임 총무가 보낸 문자를 받고 느닷없이 욕부터 튀어나왔다. 
친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부고 문자였다. 

고등학교 동기 모임 총무에게서 오는 문자는 대부분 늦게 결혼하는 자녀들의 결혼 청첩장이거나 종종 연로하신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지만, 아주 가끔 이렇게 친구 본인의 부고를 받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거의 50년이 다가오니 이름만 들으면 가물가물한 친구의 소식은 그냥 스쳐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받은 친구의 부고 소식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학교 다닐 때 같은 운동부를 했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에 만나게 된 몇몇 되지 않는 친구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서울 충무로에서 조그만 가게를 얻어 인쇄업을 하는 탓에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찾아가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곤 했고, 그 가게는 동창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었다. 

가게에는 별의별 수첩과 다양한 종류의 노트 견본들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친구는 언제나 “맘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다 써”라며 선한 얼굴만큼 인심이 후했다.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서울, 인천, 강릉, 아산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도 1년에 2~3번은 만나 식사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고, 마지막으로 당구를 치며 마무리하곤 했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해 여름에는 강릉에서 교수로 있는 친구한테 놀러 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모임은 서울에서 하자고 하고 헤어졌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것이 마지막 모임이 되었다. 

나는 작년 11월에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가면서 친구 생각이 나서 통화를 하면서 올해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얼굴 한번 보자고 한 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 

전립선암으로 몇 년째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나름 열심히 몸관리도 해서 몇 년 더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부고를 받고 보니 너무 황망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로 인해 문상을 하러 가도 괜찮을지 염려가 됐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친구가 외롭지 않도록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비게이션 앱을 켜서 장례식장을 쳐보니 1시간 45분 걸린다고 나온다. 기차 시간과 전철 갈아타는 시간을 따져보니 차를 가져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예약하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다시 앱을 켜보니 시간이 2시간 50분으로 바뀌었다. 토요일 오후에 차가 밀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서둘러 기차를 다시 알아보니 모두 매진이었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그래도 조금 빨리 가려는 셈으로 고속도로 길을 택했더니 토요일이라 정체가 심하다. 고속도로가 정체가 되어 밀리면 통행료를 받지 말거나 할인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며 괜스레 투정을 부려본다. 

겨울이라 해도 일찍 지기도 하지만 날씨가 흐려 어스름해질 무렵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며 안내 요원에게 장례식장을 물으니 A3 열에 차를 주차하면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주차장이 넓어 제대로 차를 대지 않았으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한참을 걸었어야 했을 생각을 하니 주차 요원의 친절함이 새삼 고맙다. 

마스크를 챙겨 장례식장으로 향하니 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방문 명단 작성을 한다. 가는 곳마다 하는 행사이지만 아직도 익숙지가 않다. 영안실 한편에 미리 와 있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얼핏 보인다. 

먼저 친구 사진 앞에 국화꽃을 놓고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하고 올려다보니, 영정 사진 속의 친구는 사람 좋은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쳐다보고 있다. 

“그래 이곳에서 처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시게”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 둘과 친구 아내 등 세 여인이 검은 소복을 입고 문상객들을 맞고 있다. 이젠 숙녀가 됐지만 그래도 늘 어리게만 보였을 딸들을 두고 친구는 어찌 눈을 감았을까.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에서 사람들은 죽을 때 ‘껄껄껄’ 하며 ‘껄’을 세 번 하면서 죽는다고 했다. ‘

보다 베풀고 살 걸(껄)’, ‘보다 용서하고 살 걸(껄)’ ‘보다 재미있게, 의미 있게 살 걸(껄)’ 이라고. 내 친구는 아마 “내 딸들을 빨리 시집이라도 보낼 걸”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문상을 마치고 미리 와 있던 같은 운동부 출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작년에 만나기로 했지만, 코로나로 못 만났으니 안부부터 묻는다. 상조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식사를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유족들이 해야 할 식사 준비와 대접을 이젠 상조회사 직원이 맡아서 해주니 훨씬 유가족들의 짐을 덜게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일찍 온 친구들은 벌써 술 한 잔씩 한 눈치다. 식사하고 있던 중 또 한 무리의 친구들이 도착했다.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라도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얼굴은 학창 시절 모습이 남아 있지만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얘는 XX이고, 얘는 상익이” 눈치 빠른 친구의 소개로 잊혔던 옛 이름이 떠오른다. “아, 그래 XX야 반갑다.” 거의 50년 만에 만났으니 어색할 만도 한데 금방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죽은 친구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다가 그동안 근황으로 화제가 돌아간다. 그 많은 세월을 다 나누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 우리가 60세가 되었을 때 동기들이 함께 환갑 여행을 갔었는데, 앞으로 70세가 될 때도 여행할 계획이 있는지 총무에게 물으니, 총무는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졸업한 지 50년이 됐다니,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죽은 친구 상가에서 우리는 앞으로 있을 행사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갈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즐거운 계획을 얘기하고 있어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국도를 타기로 했다. 올 때 고속도로 정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일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제 죽은 친구는 과거가 됐다. 친구를 가슴에 묻고 살아 있는 나는 벌써 내일 걱정을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차 오디오에서 테스 형 노래가 흘러나온다.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친구여,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 이곳 걱정은 하지 말고 편히 쉬시게. 자네 처자식은 어쨌든 살아갈 걸세.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