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입법 전부터 보완입법 찾는 ‘중대재해법’, 갈피 못잡는 정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구체화됐지만 여전히 노동계와 경영계는 모두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구체화됐지만 여전히 노동계와 경영계는 모두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여야 및 노사간 팽팽한 대립을 보였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그러나 긴 진통 끝에 찾은 합의점이라 하기에는 벌써부터 처벌 수위와 적용 대상 등을 두고 뒷말이 오가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 제출한 중대재해법이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 모두 납득하기 어려운 '누더기 법안'이란 지적이다. 기존 정부안보다 손질된 중대재해법에 입법 반대를 외치는 의견이 다시 불거지며,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보완 입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동계 염원 담기지 않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그동안 노동계가 오랜 시간 바라온 일이었다.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노동계 입장에선 쌍수 들어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막상 노동계 반발은 거세다. 확정된 법이 애초 안보다 처벌 범위와 책임이 크게 줄어든 까닭이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내용은 대상 기업의 범위다. 중대재해법을 둔 노사간 갈등의 핵심 쟁점이었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처벌이 3년간 적용 유예됐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공포 뒤 1년 뒤로 잡았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까지 부여되면서 사실상 2025년 전까지 소규모 사업장에 해당 법안이 적용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 주52시간을 비롯한 여러 법안들이 시행 시기가 되면 계도기간 연장 등을 부여했던 노선을 감안하면 실제 법 적용 시점은 더 늦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배제됐다. 현재 전체 사업장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달하고 근무 중인 노동자는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노동계는 이들 노동자를 외면한 것과 진배 없다며 규탄하고 있다.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들은 총 494명에 달한다. 전체 사망자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22.7%에 달하는데,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당분간 사각지대로 남게 되면서 보완이 시급한 누더기 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경영책임자 범위에 대표이사와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가 함께 포함되고, 처벌 대상에서 공무원은 빠지게 되며 책임 전가 논란도 남았다.

산재사망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다수가 사내 규정 미비 등 영세·중소 사업장의 근로자와 비정규직 등 약자인데, 법안이 약자에 대한 보호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한국노총은 8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대표이사가 바지 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비판과 함께 "노동자의 목숨값을 차별하는 위험의 차별화를 만들었다"고 날선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한국노총은 "5인미만 사업장의 적용제외를 철회하고, 법안의 근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온전한 법안으로 제정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국제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원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원청업체의 책임자는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법 제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백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 될 수 있다"며 "50인 미만 유예 기간도 원안 4년에서 3년으로 축소한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월~9월까지 산업재해 발생 현황. 3년 유예를 받은 50인 미만 사업장과 완전히 적용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발생이 눈에 띄게 높다.
지난해 1월~9월까지 산업재해 발생 현황. 3년 유예를 받은 50인 미만 사업장과 완전히 적용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발생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닌데..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빗발치는 가운데 경영계도 해당 법안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영 조차 어려워진 시점에서 지나친 규제까지 더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제정안에 따르면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법인의 경우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 여러 명이 크게 다치는 사안의 경우에는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 징역,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며 법인은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산업재해가 아닌 대형참사인 경우도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동일한 수위로 처벌받게 된다. 단 중대시민 재해의 처벌 대상에서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이나 바닥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업소 등은 제외되며 학교시설과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두고 정치적 상황만 고려한 법안이라며, 경영계의 요청 의견이 대다수 묵살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국회 법사위 소위 의결에 대한 경영계 입장'에서 "유감스럽고, 참담하고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법인에 대한 벌칙 수준이 과도하며 선량한 관리자로 의무를 다한 경우에도 면책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해당 법안이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보다 처벌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하며, 고의나 중과실 없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발생된 재해에 대한 면책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재 예방 위한 근본적 내용 담겨야
벌써부터 보완 입법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 것은 결국 해당 법안이 부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졸속 법안에 보안과 개선 이야기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법안을 처리한 여야 내부에서도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여론은 연초 가장 주목을 받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제계 양측으로부터 반발을 받고 있고, 당내 의원들도 이견이 분분하다"며 "앞으로 법을 보완·개선해 나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내부에서는 먼저 본회의에 법안을 통과시킨 후 논의를 거쳐 법안을 보강할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완 요소가 명백히 보이는 법안을 졸속 처리하는 행정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국민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OECD 가입 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필요한 법안은 경영계의 자발적 안전 강화를 유도할 수 있으면서도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일부 사업장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보다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안전 예방과 관리 광화에 초점을 맞춰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