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엎친데 덮친 중소기업, 코로나 고려 없는 주52시간제 강행에 울상

한달 앞으로 다가온 중소기업의 주52시간제 적용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로 유예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냐는 중소기업의 기대는 무위로 돌아갔다.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50~299인 중소기업의 주52시간 근로제가 연장 없이 원안대로 진행된다. 정부로서는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했고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미 이에 관한 준비를 갖추었기에 예정대로 시행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은 정부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제 도입이 회사에 치명타를 안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불황의 지속이다. 가뜩이나 열악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쳐 기본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근무시간 단축을 시행하게 되면 경쟁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다.

현안대로 진행된다면 최악의 경우, 중소기업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를 위반해야 할지도 모른다. 회사 문을 닫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워라밸도 좋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
내년부터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게 되는 50~299인 해당 중소기업은 2만 4000여곳이고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만 해도 253만여명에 달한다. 제도 도입의 취지에 따라 250만 이상의 노동자가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누릴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럽지만 그로 인해 생계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안 그래도 만성적인 인력난과 경영난이라는 이중고에 허덕이던 중소기업이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라는 매머드급 악재가 겹친 탓에 현재 중소기업의 상황은 최악에 가까운 상태다. 여기에 주52시간제라는 부담을 더하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지난 11월 1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중소기업 500곳을 조사한 결과 39%가 아직 주52시간제 도입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주 52시간 초과 근로 업체 218곳 중에서는 83.9%가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2018년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52시간제 도입을 알렸으니 거의 3년 가까운 여유를 주었음에도 준비가 미흡한 것은 중소기업의 의지 박약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응답에 응한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추가 채용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인해 준비가 어려웠다고 답한 것이 그를 보여준다. ‘구인난'(38.5%)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 악화'(28.7%) 역시 주52시간제 준비를 가로막은 장벽이었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입장이다. 주52시간 준비를 위한 추가 비용 부담을 해소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 자료제공 중기중앙회

하고는 싶지만 회사 여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미 제도를 시행중인 대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없진 않지만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우매한 발상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시스템보다는 인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주52시간제를 도입한 중소기업들이 생산성 하락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초과근무 감소로 직원의 소득도 덩달아 줄었다는 불평을 하는 것이 빈소리가 아니란 것이다.

국내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을 수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수요처 납기를 이유로 특근이나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는 경우가 잦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주52시간제 도입을 강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근과 야근이 사라진 중소기업 근로자는 이에 따른 특·야근 수당 등을 포기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런 수당이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근로자들의 가계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기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어차피 납기를 맞추자면 특근과 야근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존 근로자의 활용이 불가하다면 대체 인력을 뽑아 이를 감당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부담을 떠안을 만한 체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코로나 불황까지 감내하고 있는 중소기업 상당수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이용기 교수는 “상당수 중소기업이 비용 부담과 인력난 등으로 주 52시간제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황임은 명확하다”면서 “정부로서도 지난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한 상황이라 쉽진 않겠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 국회 발의 탄력근무제 개편 법안 조속히 처리해야
세계 최고의 코로나 방역국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번진 코로나19 재확산세는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코로나19의 위세가 높아질수록 경영 환경의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특히 중소기업은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회사를 쪼개 종업원 50인 미만의 구조로 재편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렇듯 현장에서의 체감은 극한에 다다른 상황이지만 정부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어차피 주52시간제의 시행은 피할 수 없다면 이와 관련된 보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탄력근로제 도입은 그래서 늦출 수 없는 과제인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설문을 통해 중소사업장 2만 4000곳 가운데 81.1%가 이미 52시간제를 도입 중이라고 답했고, 내년에 준수 가능하다는 응답도 91.1%에 달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거의 대다수가 참여한 상황에서 굳이 이를 유예할 필요가 없다는 속내를 보인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이미 던진 주사위를 회수할 생각은 없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경영계와 중소기업의 의견을 받아들여 1년의 계도기간을 준만큼 더 이상의 양보가 힘들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중소기업계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볼 필요는 있어보인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제도적 보완이다. 중소기업이 죽는다는 건 곧 우리 경제의 파탄을 의미한다. 당연히 정부로서도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다. 52시간제 도입을 피할 수 없다면 중소기업계가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유연근로제 도입이 최대한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탄력근무제 개편 등과 관련한 법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조속한 처리 요구에도 산적한 정쟁에 밀려 방치되고 있는 현 상황이 이어져선 안 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으로 해소되지 않는 현장애로 보완을 위한 대책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8시간 추가연장근로 제도를 모든 중소기업으로 기한 없이 확대 ▲특별연장근로제도 인가 요건 완화 ▲일본처럼 월간(또는 연간) 연장근로의 사용한도를 정해놓고 기업이 알아서 활용▲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