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개정 기간제·사내 하도급 가이드라인..노사 모두 불만 표출

민간기업에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를 두고 노사 모두가 불만이다. 사진은 정규직 쟁취를 위해 시위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고용노동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기간제·사내 하도급 가이드라인’ 개정안에 대해 노사가 약속이나 한 듯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비치고 있어 향후 이와 관련된 양측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산업현장의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는 경영계와 비정규직 고용개선의 의지가 없는 ‘눈 가리고 아옹’ 식의 전시행정일 뿐이라는 노동계의 입장이 공존하는 이번 개정안이 현장에 접목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바람직한 고용구조의 자율적 조성을 위한 의지의 표출이라는 입장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노사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이러니는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바라보는 시선의 양극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 지를 새삼 곱씹게 한다.

■ 권고에 그친 가이드라인, 필요한 건 비정규직법 개정
정부는 19일 ‘기간제근로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과 ‘사내하도급 근로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요소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된다. 민간기업의 기간제근로자 사용을 제한하고, 원청업체에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민간기업으로 점차 확대하려는 정부의 복심이 반영된 이번 개정안은 언뜻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노동계의 입장은 생각보다 마뜩치 않은 게 분명하다. 개정안 발표직후 양대 노총 모두 불편한 심산을 즉각적으로 내비쳤기 때문이다.

개정안 발표 당일, 한국노총은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지금 필요한 것은 권고사항에 불과한 가이드라인 개정이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 및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근본적인 비정규직법 개정”이라고 토를 단 것이 그 증거다.

한국노총은 이번 개정안이 지나치게 권고 사항 위주에 머물러있고,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이런 임기응변식의 대처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도출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에 힘을 실어달라고 촉구했다.

자료제공 고용노동부

민주노총 역시 비슷한 입장을 견지했다. 개정안 발표 다음날인 20일, “노동부의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은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전적으로 사용자의 의지에 맡기겠다는 직무 유기”라며 “실효성없는 가이드라인을 폐기하고 상시업무 직접고용과 사용사유제한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민주노총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채용원칙 실현을 위한 법제도 개정을 포기하는 명분쌓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밝히고 있어 개정안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표출했다.

내용상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나 결국 양대 노총의 입장은 비정규직법 개정이란 지점에서 합류한 상태다. 비정규직 차별 및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답은 결국 비정규직법 개정만으로 이룰 수 있다는 노동계의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 경영계, 가이드라인 따랐다간 법원 철퇴 맞을 수도
법적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경영계의 입장은 좌불안석 그 자체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적으로 강제적 지침과 별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기엔 무리가 뒤따른다는 것이 경영계의 논리다.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안의 권고 사항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단 기준과 상충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법률을 바탕으로 법 해석과 행정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에 없는 의무를 기업에 권고하거나 판례와 상충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산업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제한하지 않고 있는 사용 사유에 행정적 규제를 가하는 가이드라인인데다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의 판단 대상과 범위를 확대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법령의 해석 및 위임 범위를 넘어서거나 법원의 판단 기준과 상충하는 가이드라인 내용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며 “자율적 권고 사항인 가이드라인이 강제적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기업에게 선택과 활용의 재량을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법적 강제력이 없어 사용자의 노력을 촉구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정부의 의지에 비추어본다면 기업들이 이를 무시하긴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고용구조개선 지원단’과 근로감독관의 가이드라인 배포 및 안내, 준수 권고 활동 등을 통하여 노동현장의 인식 확산 및 자율 준수를 유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간제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등 고용구조개선에 노력하는 기업에 대하여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 및 세액공제제도 등 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안내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덧붙이면서 이번 가이드라인 준수 상황을 엄중히 지켜보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입장이라 기업들로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법원은 불법파견 관련 소송에서 기업들의 잘못을 꾸짖고 있는 추세라 이번 가이드라인 권고 사항 준수를 놓고 기업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연좌 농성 장면. 사진제공 비정규직지회 공식 페이스북
최근 들어 법원은 불법파견 관련 소송에서 기업들의 잘못을 꾸짖고 있는 추세라 이번 가이드라인 권고 사항 준수를 놓고 기업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연좌 농성 장면. 사진제공 비정규직지회 공식 페이스북

그러나 앞서 경총이 언급한 것처럼 가이드라인을 따랐다가 자칫 법원의 철퇴를 맞는 것이 아닌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법원은 이와 관련된 불법파견 소송 대부분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HR서비스산업협회 남창우 사무총장은 “이번에 발표한 가이드라인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단기준과 상충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가이드라인 기준을 충실히 실행한 기업들이 자칫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